4년 9개월간의 연재
『객주』는 서울신문에 1979년 6월 1일부터 1984년 2월 29일까지, 총 4년 9개월간 연재되었다.
1981년‘ 창작과비평사’에서 출간되어 1984년 총 9권이 출간되었으며, 이후‘ 문이당’을 거쳐 2013년에 ‘문학동네’에서 10권으로 완간되었다.
1981년‘ 창작과비평사’에서 출간되어 1984년 총 9권이 출간되었으며, 이후‘ 문이당’을 거쳐 2013년에 ‘문학동네’에서 10권으로 완간되었다.
-
- 1979년 6월 1일 / 1979년 7월 2일
- 밤늦은 시각, 계곡 가 굽은 길을 오르는 것은 《객주》의 주요 등장인물인 천봉삼이다. 한편 최가는 예주목 어느 초상집 상제에게 문상객인 척 접근 하여 배를 채운다.
-
- 1979년 8월 2일 / 1979년 9월 1일
- 봉삼과 선돌이 일행이 되어 간 예천 봉놋방에서 석가란 자가 봉삼을 알아 본다. 석가는 매월이를 욕보이려다 오히려 양물을 잘리나 누구도 관아에 고발하거나 의원을 불러주지 않는다.
-
- 1979년 10월 1일 / 1979년 10월 12일
- 봉삼과 최가는 조순득에게 잡혀간 선돌이를 구하기 위해 조순득의 딸을 납치하기로 계획하고 여인과 하녀 계집아이를 덮친다. 봉삼은 여인을 짊어지고 팥죽집 할미 집으로 들어선다.
-
- 1979년 11월 26일 / 1929년 12월 13일
- 면천하기 위해 최가를 따라나선 월이는 두 사람을 의심한 뱃사공들에게 잡혔다가 도망쳐 최가와 혼인한다. 한편 조성준과 길소개, 이용익은 어리 석은 양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발길을 재촉한다.
-
- 1980년 1월 1일 / 1980년 2월 1일
- 양반과 시비가 붙은 길소개는 그들을 겁줘서 행낭 속 초피(노랑 담비의 모 피)를 빼앗는다. 이후 조성준과 김학준의 집에 숨어든 길소개는 운천댁을 협박하여 정체를 숨기려 한다.
-
- 1980년 3월 1일 / 1980년 5월 1일
- 운천댁은 이용익을 불러 길소개를 도망시키려 하고, 두 사람은 운천댁이 준비해놓은 나귀 두 마리를 건네받는다. 길소개는 김학준에 집에 혼자 숨어들어 운천댁과 만난다.
-
- 1980년 6월 2일 / 1980년 6월 20일
- 강경에 도착한 이용익과 조성준은 김학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. 한편 조성준은 깍정이들이 보여준 어음을 통해 동행한 탁가가 실은 김학준의 첩 천소례의 수하임을 알게 된다.
-
- 1980년 7월 14일 / 1980년 8월 25일
- 최가와 석가는 시비가 붙고, 얼마 후 최가는 시신으로 발견된다. 최가의 살인범을 찾던 소몰이 상단과 선돌이는 용의자를 두둔하는 이방에 분개해 그를 풀뭇간(대장간) 천장에 매단다.
-
- 1980년 9월 5일 / 1980년 10월 1일
- 최가가 죽고 과부가 된 월이는 천봉삼과 함께 섬진강 줄기를 따라 그 상류에 있는 구례로 향한다. 전주에서 변승업의 전도가에 물건을 팔러갔던 월이는 맹구범에게 잡혀 갇히고 만다.
-
- 1980년 11월 24일 / 1980년 12월 17일
- 맹구범의 계략에 넘어간 매월은 관아에 잡혀가나 기지를 발휘해 옥졸에게서 도망친다. 한편, 김학준의 첩인 천소례는 과거 누명을 쓰고 동생과 함께 시집에서 쫓겨났던 천봉삼의 누이였다.
-
- 1981년 1월 1일 / 1981년 2월 10일
- 조성준은 탁가(천동이)를 미끼로 천소례를 납치하고, 탁가는 김학준 집 겸인들에게 죽임을 당한다. 한편 소과에 급제한 길소개는 신석주의 수하 맹구범을 만나 기방으로 향한다.
-
- 1981년 3월 6일 / 1981년 4월 25일
- 봉삼은 신석주의 첩실이 된 연인 조소사를 만나고자 한다. 신석주는 시전의 상권을 휘어잡고 있는 거상으로, 과거 담배장사로 큰돈을 벌었고 뇌물로 권력을 키운 인물이다.
-
- 1981년 6월 21일 / 1981년 8월 13일
- 맹구범은 조소사와 천봉삼의 사이를 신석주에 일러바치나, 월이의 말을 들은 신석주는 도리어 맹구범을 벌준다. 한편 길소개는 세곡을 횡령하려 하나 수적들에게 세곡선을 탈취당한다.
-
- 1981년 10월 18일 / 1981년 12월 30일
- 유필호와 천봉삼에게 곡식밀매를 들킨 길소개는 둘을 포박한다. 이후 길소개는 불안한 마음에 무당을 찾는데 그가 매월이었다. 운천댁은 매월이의 점괘가 잘못되었다고 내친다.
-
- 1982년 1월 13일 / 1982년 3월 11일
- 선돌이는 고향으로 돌아가나 아내는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고 있었다. 한 편 이용익은 도둑맞은 밀매품에 관해 신석주와 상의하고 나오다 매월이를 만나고, 두 사람은 관계를 맺는다.
-
- 1982년 3월 17일 / 1982년 4월 2일
- 이용익은 애꾸가 된 선돌이를 찾아가고, 선돌이는 그에게 접장을 정하는 보부상 총회(공사)가 열릴 것이란 사실을 알려준다. 선돌이의 술수 덕에 천봉삼이 접장으로 정해진다.
-
- 1982년 4월 18일 / 1982년 5월 27일
- 선돌이의 진혼굿을 위해 만신을 불러들인 천봉삼은 무당이 된 매월이와 마주한다. 유필호는 천봉삼의 아이를 가진 조소사를 탈출시키나, 조소사를 수행하던 월이는 신석주의 집으로 돌아간다.
-
- 1982년 10월 23일 / 1982년 11월 5일
- 천봉삼은 원산포를 왜국에 열어준 뒤로 물가가 폭등하고 있음을 확인한다. 유필호의 소개로 이윽고 이재선(흥선대원군을 옹립하려는 인물)을 만난 봉삼은 피폐해진 경제상황을 고한다.
-
- 1983년 6월 24일 / 1983년 7월 9일
- 이춘보는 농민이었으나 대원군에 눈에 들어 양반 지체가 된 인물로, 유필호는 그의 딸과 결혼한다. 한편 천봉삼의 수하가 왜상 앞잡이의 선대 무덤을 훼손한 일로 투옥되자 유필호는 선처를 호소한다.
-
- 1983년 8월 16일 / 1983년 8월 26일
- 민영익은 천봉삼을 구금하고, 천소례는 매월이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가 몸종노릇을 하게된다. 민비의 눈에 든 매월이는 진령군에 봉해지고, 귀신 을 부리는 이유인과 모자지간을 맺는다.
-
- 1983년 9월 20일 / 1983년 10월 25일
- 다락원에서 재회한 월이와 천봉삼은 부부가 되고, 천봉삼이 다락원에 있다는 소식에 동료들이 모여든다. 천봉삼은 친형제처럼 지내온 곰배, 강쇠와 함께 왜상을 몰아낼 계획을 세운다.
-
- 1983년 11월 5일 / 1983년 12월 17일
- 천소례는 대신 몸종이 될 것을 자청한 월이 덕분에 매월이에게서 풀려난다. 왜상들과 거래하던 최 대주의 집에 불이 나자 천봉삼은 그를 도와주고 왜상들과 거래를 끊을 것을 종용한다.
-
- 1984년 1월 15일 / 1984년 1월 27일
- 왜상을 침탈한 일로 천봉삼은 의금부로 압송당한다. 이용익은 매월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, 매월이 또한 민비에게 천봉삼의 구명을 간청한다.
-
- 1984년 2월 18일 / 1984년 2월 24일
- 효수형을 선고받은 천봉삼은 이용익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장부답게 죽겠다고 한다. 이용익과 매월이는 감옥의 간수장(옥사장)을 매수, 시신을 바꿔치기하여 천봉삼을 구한다.
-
- 2013년 4월 1일
- 갑신년 2월 하순, 정한조가 이끄는 소금 상단 일행은 산기슭 가파른 길을 부지런히 걷고 있다. 이들이 넘나드는 십이령길은 울진 포구와 영남 내륙을 잇는 소금과 미역의 길이자 조선경제의 모세혈관이다.
-
- 2013년 6월 3일
- 권재만은 울진 관아를 찾아가 현령에게 십이령길의 화적에 관해 고한다. 현령은 부패한 아전들의 행태를 개탄하며, 십이령길을 지켜 울진의 염전과 백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한다.
-
- 2013년 7월 16일
- 배고령은 정한조로부터 길세만을 찾아내라는 명을 받고 동분서주하지만, 어디서도 길세만의 행적을 찾지 못한다. 와중에 월천댁의 숫막에 들른 배고령은 밤을 틈타 구월이와 만나기로 약속한다.
-
- 2013년 7월 25일
- 십이령길의 화적떼를 일망타진했다는 소문을 듣고 안동 상인들이 곽개천 일행을 찾아온다. 안동 상인들은 곽개천, 천봉삼과 함께 술잔을 나누며 행상들을 괄시하는 현실, 시전과 난전 상인들의 다툼에 대해 이야기한다.
-
- 2013년 8월 6일
- 울진 현령은 화적을 소탕한 것을 치하하는 연회를 베푼다. 권재만이 현령에게 투옥된 염간(염전에서 일하는 사람)의 방면을 청원하는 사이, 정한조는 행수기생인 향임에게서 아전들의 부패와 관련된 정보를 얻는다.
-
- 2013년 8월 26일
- 적당의 장물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정한조와 천봉삼 일행은 각자의 밑천까지 한데 모아 빈민들과 함께 생달마을에 정착한다. 천봉삼 내외는 그곳에서 객주를 열고, 생달마을은 불과 2년 만에 문전옥답으로 바뀐다.